9번째 타임로그 |2017.02.08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 김혜나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아버지가 교회에 가는 모습은커녕 성경을 읽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무엇이 그를 종교로부터 달아나게 했을까. 답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집 안 책장에 아직도 남아 있는 아버지의 책들 중 『내 잔이 넘치나이다』 『생의 이면』 『만다라』 같은 소설들을 읽어보며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내 멋대로 그려볼 뿐이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항상 곧고 정직하게 밀고 나갈 수만은 없는 거야. '동물의 왕국' 같은 걸 봐라. 비단 약육강식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같은 사자끼리만 놓고 보아도 강한 사자와 약한 사자가 있게 마련이잖니. 암컷을 놓고 수컷들끼리 싸울 때, 약한 사자는 굳이 나서서 싸우지 않고 그냥 물러나잖아. 자신이 더 약해 싸움에서 질 것을 분명히 알고 있거든. 그런데 만약 그걸 알면서도 싸움에서 도망치는 건 비겁한 짓이라고 판단해 무작정 싸운다고 생각해봐라. 그럼 결국 죽게 되고, 나중에 다시 힘을 길러 싸워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마는 거 아니겠니. 더럽고 치사해도 일단은 숨죽이며 자신의 힘을 길러야지. 올바르다고해서 무조건 맞서기만 하는 건 정말 무모한 짓이야."
아버지가 어머니와 별거하기 전, 밤늦은 시간에 홀로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특히 동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좋아해 새벽 시간까지도 종종 보곤 했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비겁해지는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오른쪽 창밖으로 돌리며 무심한 듯 이야기했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는 왠지 더 집요해지는 듯했다.
"그래, 비겁해지지. 하지만 어쩌겠니. 더러운 꼴 안 보겠다고 지금 죽을 순 없는 거야. 전쟁이 일어나 나라가 망하고 자식과 부인, 재물을 모두 다 적군에 빼앗겨도 죽는 것보다는 살아남는 게 중요해. 적의 종으로 들어가 때를 기다리고 힘을 길러 다시 치는 경우도 허다하잖니."
"그래요, 와신상담. 『손자병법』 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죠."
"그건 소설이 아니라 역사야.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대처해나갈 지혜를 배우는 거다. 나이가 들수록 비겁해지는 게 아니라, 삶의 지혜를 깨닫게 되는 거지."
나는 낮게, "그래요...... 아버지 말이 맞아요" 라고 중얼거렸다. 분명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내게 왕과 장군들이 등장하는 역사 속 이야기는 너무나 먼 허구의 세계 같았고, 모두 다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한 소설은 오히려 내 손에 잡히는 진짜 현실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갈비뼈 사이로 오래 묵은 돌이 착착 얹혀 내려앉고 있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억지로라도 트림을 좀 하려고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콩콩 찧어 보기도 했다. 웨딩홀의 뷔페에서 밥을 먹고 바로 차에 올라서인지 소화가 제대로 안 되고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차문 안 쪽 손잡이에 달린 단추를 눌러 차창을 내리고 바깐 공기를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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