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째 타임로그 |2017.04.23

<호수 ─ 다른 사람>, 강화길

그 순간, 수면이 흔들렸다. 발이 돌덩이 위에서 미끄러졌고, 나는 중심을 잃었다. 나는 물에 빠졌다. 차가운 물이 온몸을 감싸안았다. 살결이 축축해졌다. 나는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커먼 세상이 나를 짓눌렀다. 차갑고 지저분한 물속에 나 홀로 있었다. 나는 팔을 허우적댔다. 손에 무언가 와 닿았다. 그 물건이었다. 나는 얇고 단단한 그것을 꽉 움켜쥐었다. 딱딱한 촉감이 손바닥에 착 달라붙었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호수의 무수한 기억이 내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호수에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강간을 당했다. 두들겨맞았다. 발가벗겨진 채로 발견되었다. 왜냐하면 상대가 원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원했기 때문에 그녀는 원하지 않는 일을 당했다. 여자는 구급차에 옮겨지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구급대원들이 그녀를 일으키자, 여자의 거기에서 돌멩이가 후드득 떨어져내렸다고. 물론,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밤새 홀로 누워 있던 그녀의 몸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그녀가 흐릿하게 맴도는 의식을 어떻게 간신히 붙잡았는지, 어떻게 눈을 부릅뜨고 견뎠는지, 그러나 정작 누군가 도와주려 손을 내밀었을 때는 잔뜩 겁에 질려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는 것에 대해 다들 한 번씩은 이야기했다. 그러나 자잘한 돌멩이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냈던 그 소리에 대해서만, 오직 그 이야기만 사람들의 입에 끈질기게 오르내렸다.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그랬었야지. 그래. 그랬었야지. 그러게 호수에 왜 갔느냐고? 왜 왔느냐고?
시큼하고 텁텁한 물이 입속으로 들어왔다.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차가운 물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체온이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머리카락이 흔들렸고 살결이 물에 불어났다. 눈동자에 물속의 벌레들이 달라붙었다. 호수에 왜 갔는냐고? 왜 왔느냐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당신이 원한 거잖아요. 그래서 따라 들어온 거잖아요. 아니에요? 물이 목구멍 너머로 꿀꺽꿀꺽 넘어갔다. 나는 캄캄한 물속에서 기침을 했다. 나는 물건을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물건을 꽉 잡고 다리를 아래로 뻗었다. 발가락 끝이 간신히 바닥에 닿았다. 어깨가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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