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째 타임로그 |1120

고려의 소드마스터 '척준경'

고려시대의 무장. 전공으로만 보면 한국사 최강의 맹장이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다.
말 그대로 소드마스터 척.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사시간에 무신정권 배울 때 얼핏 들었던 것 같은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1]
드라마 한두 편 멋지게 나와줘야 기억하는 더러운세상

곡산 척씨의 시조이며, 지방 향리 출신이었다. 학업보다는 동네 애들이랑 노는걸 더 좋아했다고 한다.

이후 우연히 그 무력을 인정받아 중앙의 군인이 되었고 숙종조때의 여진 침공에서 패배의 위기에 몰린 총사령관 임간 막하에서 뛰어난 용력을 발휘, 정평과 선덕관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는 공을 세우게 된다. 이 때 척준경은 품계도 없는 하급관리인 '별가' 직책에 있었는데 총사령관 임간에게 직접 "다 쓸어버리겠다"고 예고 올킬을 날려버리면서 말 한필과 무기를 요구했다. 현질은 기본. 품계도 없는 듣보잡이 사령관에게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건방진 행동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임간은 척준경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 결과는 무쌍난무 한 판을 펼치고 돌아와 여진군을 몰아내 버렸다.

그런데 이 때 뭔가 잘못되었는지 공을 세웠음에도 옥에 갇혀 위기를 맞기도 한다. 왜 투옥되었는지는 사서에 나와 있지 않지만 유추해 보면 공을 세운 것에 우쭐하다가 사고를 쳤거나, 다른 사람이 척준경의 공을 시기하여 엉뚱한 죄를 뒤집어씌워 투옥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를 구해주고 능력을 펼칠 수 있게 한 사람이 바로 윤관이다.

이 때의 인연으로 윤관과 함께 여진족 정벌에 참가하여, 인간으로는 보기 힘든 무공을 세워 소드 마스터 척사마, 척미네이터 등으로 불린다. 단신으로 적진에 돌입해서 적장을 잡고 인질 2명 구출, 칼 한 자루, 방패 하나 들고 적진에 닥돌해서 진형 무너뜨리고 적장 2~3명 잡기[2], 성벽 타고 혼자 넘어가서 문열기, 10명의 부하들과 특공으로 1000명의 여진족들을 상대로 윤관 구출 등. 실로 엄청난 기록이 많다. 일례로 윤관이 위기에 빠졌을 때 부하 10명을 이끌고 윤관의 활로를 뚫으려 하자 동생 척준신이 자살행위라며 말리는데, 척준경은 "나는 한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늙으신 아버님을 부탁하마."하고 간지폭발 대사를 날리며 돌격한다. 윤관 구출에 목숨을 건 이유도 윤관이 먼저 척준경을 알아주었기 때문인 모양.

근데 털끝 하나 안 다치고 살아나왔다!! 이 때 윤관은 눈물을 흘리며 "나는 앞으로 너를 자식처럼 생각할 테니 너 역시 나를 아버지처럼 보라!"라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이처럼 전공이 대단했기에 어떤 사람들은 척준경이 없었다면 여진 정벌이 엄청난 참사로 실패했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실제 여진정벌 당시의 전투상황을 보면 지형을 잘 아는 여진족에 의해 윤관 등의 지휘부마저 괴멸당할 뻔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윤관이 척준경을 아들로 삼다시피 했을까. 이때 세운 전공을 보면 《삼국지연의》의 장수들 뺨치는 수준.

더 놀라운 것은, 이 기록들은 죄다 야사가 아니라 엄연한 정사인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나온 내용이라는 것이다. 흠좀무. 정사에서 혼자 무협지 쓰고 있는 사람.(...)

그리고 척준경에게 호되게 당한 여진족의 장수들은 정작 송과의 전쟁에서는 혁혁한 전공을 올려 금이 북송을 멸망시키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게다가 금은 척준경에게 호되게 시달린 여파인지는 몰라도 고려와의 국경분쟁에서 요가 차지하고 있던 성을 그냥 고려에게 넘겨야만 했다. 덤으로 척준경이 여진과의 전투를 치르던 시기는 금의 국력이 개국 이래로 한창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시기와 일치한다.

과거 신동우 프로덕션의 국사만화 시리즈에 "척, 척 베어버리는 척준경이가!!" 라고 여진족이 두려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몇몇 사례들
그의 몇몇 사례들(좀 더 재밌고 길게 쓴 내용)

요약하자면, 리얼 무쌍난무. 단신(혹은 결사대 10명)으로 돌격해서 순식간에 적장 무찔렀다를 한 두번정도 외쳐준다.

아, 그렇다고 머리가 멍청한가 싶으면 그건 또 아니다. 하루는 인종이 깨 닷되와 황규(黃葵) 서 되를 얻은 꿈을 꾸고 이를 척준경에게 말하자 대답하기를,
“깨는 한자(漢字)로 임(荏)이요, 임(荏)은 임(任) 자와 음이 같으니, 임(任) 자 성을 가진 후비를 맞을 징조요, 그 수가 다섯이란 것은 다섯 아들을 둘 상서입니다. 황(黃)은 황(皇)과 음이 같으니 임금의 황(皇)과 같은 뜻이고, 규(葵)란 것은 바로 규(揆)와 음이 같으니 도(道)로 다스린다는 의미의 규(揆)와 같고, 황규(黃葵)란 것은 임금이 도로써 나라를 다스릴 상서요, 그 수가 셋이 된 것은 다섯 아들 가운데 세 아들이 임금이 될 징조입니다. 《고려사절요》
이렇게 인종의 꿈풀이를 해줄 정도로 기본적인 지식은 있는 사람이었다. 성격은 전형적인 무인상으로 쾌활하고 의리있는 사나이였지만[3], 다혈질에 너무 순진해서 정치를 하기에는 모자랐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파벌싸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권력다툼에 염증을 느껴 낙향하려 하기도 했으나 인종이 사람을 보내 복귀시켰다.

여진 정벌 이후, 이자겸의 난에 가담했다가 왕의 설득에 마음을 고쳐먹고 반대로 이자겸을 체포하여 공을 세웠다.[4] 이 공으로 문하시중[5]에 임명되었으나 계품을 뛰어넘었다며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몇달후 공신각에 그의 화상이 걸리어 고려의 신하로써 얻을수있는 최고의 영예를 누리게 되지만 이자겸처럼 권세를 남용해 수탈을 일삼지도, 자기 사람들을 이용해 도당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 이듬해 정지상의 "이자겸을 잡은건 일시의 공로요, 궁궐에 불을 지른 사건은 만세(萬世)의 죄인이니, 폐하께서 비록 사람에게 차마 못하시는 마음이 있으나, 어찌 일시의 공으로 만세의 죄를 덮겠습니까." 라는 페이크[6]로 결국 귀양을 가게 되지만 그를 아낀 인종은 척준경을 귀양 보내고 나서 1년 뒤에 고향으로 귀향 보내 주고, 자손들에게 사면령을 내려주고 죄도 더이상 안묻도록 하는 등 지속적으로 은전을 베풀다 17년 후에 척준경을 다시 불러오지만, 척준경은 얼마 못가서 등창으로 사망하게 된다.

실은 이자겸의 난 당시에 이자겸의 심복이라 평가가 낮아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자겸의 꾀임에 넘어간 것일 뿐 사실은 인종에게 더 충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자겸의 난은 인종의 친위세력 쿠데타로 시작되었는데, 초기 단계에서 척준경을 목표로 한 공격이 실패하고 대신 동생과 아들이 죽었다(…). 동생과 아들이 죽은 마당에 다른 것이 보일 수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의 말 한마디에 이자겸을 배반하고 축출한 것이나 정지상이 이자겸의 난 때 궁궐 방화를 핑계로 탄핵했을 때 부하들이 거사를 제의하였지만 자신은 고려의 신하라고 말하며 군말없이 귀양간 점 등을 보면 충신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정치적 불운이 컷을 뿐.

상대적으로 무신정권의 군상들을 보면 척준경이 얼마나 대인배인지 확인할 수 있다. 다른 놈들은 차치하고 이의민이 자신을 발탁한 의종을 뒤로접고 앞으로 접고 접고 접어서 가마솥에 쳐넣어 벌인 차력쇼를 연상해도 좋다.

하지만 고려사에는 반역열전에 등재되어 있다. 역시나 이런 이유는 이자겸의 난에 그가 참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7]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인물로 능력도 뛰어나고 인간적인 매력도 풍부해 드라마로 잘만 만들면 대박날 소재지만...

한번도 다뤄진 적이 없다. 이유인즉 절친한 동료 무장의 이름이 왕자지(王字之)라서(...), 이 사람 때문에 대략 난감하여 사극화가 지극히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우스갯 소리고 실제론 9성 정벌에 대한 관심이나 인식이 보잘 것 없는 탓이 크다. 사실 나와봤자 공험진 압록강 이북 700리설등 대륙 떡밥만 뿌릴 가능성이 높다.

동생 척준신 역시 무관으로 종사하며 형과 함께 여진정벌에 참여해 공을 세웠고 형의 후광을 등에 업고 병부상서까지 올랐으나 이자겸의 난 직전에 인종의 친위세력들에게 살해당했다. 아들 척순은 내시[8]로 근무하다가 척준신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실존하는 소드 마스터 떡밥으로 판타지 갤러리 등의 역사 관련 커뮤니티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상.

농담삼아 그의 후예 중 하나가 척 노리스라는 말도 나온다.

종합해 보면 뛰어난 무력을 지닌 충성심 깊은 훌륭한 장수였으나, 정치 감각이 너무나 없던 나머지 정치적 암투에 휘말려 희생된 불쌍한 사람. 만약 이자겸의 난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최영이나 윤관과 같은 고려의 명장들과 함께 이름이 남았을 것이다.

길게 보면 묘청의 서경천도운동과 무신정권과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천도운동의 중심인물인 정지상이 이때 척준경을 탄핵한 공로로 정계의 중심인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한편, 여진 정벌 등의 전공으로 세력을 이루었던 무신들의 대다수가 전쟁 영웅인 척준경에 동조했다가 한 큐에 숙청 당해서 한동안 무신들의 권력 공백상태가 이어졌기 때문.
사실, 이자겸의 난이 실패한 이유는 이자겸이 척준경을 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드마스터를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 출처 : 엔하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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