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타임로그 |1440

조선의 시프마스터 '홍길동'

한국 사람치고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가장 유명한 히어로(?).

본래 실존했던 강도단의 도적.

도적패 두목이였고 그의 부하 중에서 일부가 벼슬아치와 결탁해서 당상관 행세를 했다는 걸 봐서 전국구 도둑이라고 보면 될듯. 본래 홍길동은 무지막지하며, 잔인한 도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알릴까봐 자신을 숨겨준 가족을 죽이거나, 얼굴 가죽을 벗겨서 매달아 놓는 등 잔혹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이 욕설로 쓰이기도 했을 정도.

홍길동은 처음에는 충주일대에서 활약했다. 홍길동은 버젓이 당상관의 차림으로 무리를 이끌고 관아에 들어갔으며 그 기세에 눌려 지방 관아에도 깍듯이 존대하였다고 한다.

산 속에 들어가 근거지를 두고 활동한 흔적은 없으며 지방의 권농이나 이정, 유향소의 좌수, 별감등도 알아볼 정도였다. 그 위세가 일반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홍길동은 정3품 당상관인 첨지중추부사를 자칭하며 무리를 이끌고 관가에 들어가 기탄없이 행동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조정은 홍길동에게 강상죄를 적용하였다.

실록에는 홍길동을 잡았단 기사 이외에 어떻게 벌주었다는 기사가 없다. 연산군일기가 시대 상황으로 인해 다소 누락된 부분이 많다고는 하나 다른 기록이 상세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점이다. 다만 훗날 조선 선조때 홍길동과 같은 강상의 죄로 잡힌 이연수의 처리를 논하면서 홍길동의 경우를 들어 도당을 나누어 가두고 심문하기를 청하는 것으로 보아 옥중에서 서로 말을 맞추었거나 일부 탈옥을 했을 수도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악명이 희미해지고 '벼슬아치들을 엿먹인 도적'이란 이미지만 남자, 지배층을 까고 싶은 민중의 욕구와 맞아떨어져 미화되기 시작한다. 이시카와 고에몽과 유사한 케이스. 그런데 이게 그대로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이유는 다름아닌 홍길동이 살아있던 시기의 조선의 임금 때문인데 그게 다름아닌 더 킹 오브 폭군이라 불리는 연산군. 임금이 워낙 폭군이였던 시대의 도적이였던 지라 의적의 이미지를 입히기도 무지하게 쉬웠던 것이다. 만약 세종대왕 시절의 도적이였더라면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의적의 이미지를 입히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홍길동이 영웅으로 표현된 홍길동전이 인기를 끌면서 의미가 역전되어 어린 소년들이 홍길동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는 등 긍정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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